코딩 시키면 논술에 도움이 되나요?
글솜씨가 늘지는 않습니다. 다만 논술이 막히는 자리와 코딩이 막히는 자리가 같습니다. 둘 다 생각의 구조에서 막힙니다.
상담에서 가끔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코딩 시키면 나중에 논술에도 도움이 되나요?"
솔직하게 먼저 말씀드리면, 글솜씨가 늘지는 않습니다. 코딩을 한다고 문장이 매끄러워지거나 어휘가 늘지 않습니다. 그건 읽고 쓰면서 늘어납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논술에서 막히는 자리를 보면, 글솜씨 때문에 막히는 경우가 생각보다 적습니다.
논술이 실제로 요구하는 것
답안을 써 보게 하면 대개 이런 데서 걸립니다.
- 제시문이 무엇을 묻는지 정확히 못 잡는다
- 하고 싶은 말은 있는데 어떤 순서로 놓을지 모른다
- 근거와 곁가지를 구분하지 못한다
- 반대 입장이 나오면 어떻게 처리할지 모른다
- 분량 안에 뭘 넣고 뭘 뺄지 못 정한다
문장력 문제가 아닙니다. 다섯 개 다 생각의 구조 문제입니다.
코딩에서 막히는 자리
그런데 코딩을 시켜 보면 아이가 막히는 자리가 똑같습니다.
- 무엇을 만들지 정하지 못한다
- 큰 문제를 작은 것으로 나누지 못한다
- 핵심과 곁가지를 구분하지 못한다
- 예외가 생기면 어떻게 할지 모른다
- 뭐부터 만들지 못 정한다
같은 목록입니다. 순서를 세우고, 나누고, 버리고, 예외를 처리하는 일이요.
다만 결정적으로 다른 게 하나 있습니다
논술은 애매하게 써도 점수가 나올 때가 있습니다. 읽는 사람이 알아서 채워 읽어 주기 때문입니다.
코드는 그게 안 됩니다. 생각에 구멍이 있으면 바로 안 돌아갑니다. 컴퓨터는 알아서 채워 읽지 않습니다.
저는 이게 코딩의 진짜 값이라고 봅니다. 실력을 키워 줘서가 아니라, 틀린 걸 즉시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논술은 몇 주 뒤에 첨삭으로 알게 되는 걸, 코딩은 3초 만에 알게 됩니다.
그래서 순서가 이렇게 됩니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힘이 먼저 있습니다. 이건 눈에 안 보입니다.
코딩은 그 힘을 눈에 보이게 만드는 도구입니다. 순서를 정하고, 조건을 나누고, 반복을 찾아내는 걸 손으로 해 보게 만듭니다. 잘못 생각하면 화면이 바로 알려 줍니다.
그리고 그 위에 AI 리터러시가 얹힙니다.
AI를 잘 쓰는 아이가 하는 일
AI에게 일을 시키는 건 논술과 코딩의 중간쯤입니다.
말로 해야 하니까 논술이고, 정확해야 하니까 코딩입니다. 애매하게 시키면 애매한 게 나옵니다. 그리고 나온 답이 맞는지 판단하려면 반대 근거를 떠올릴 줄 알아야 합니다. 논술에서 반론을 처리하는 일과 같습니다.
그래서 AI를 잘 쓰는 아이는 도구를 빨리 익힌 아이가 아닙니다. 뭘 시킬지 정확히 말할 줄 알고, 나온 걸 의심할 줄 아는 아이입니다.
하지 마셔야 할 것
논술 학원 대신 코딩 학원에 보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논술은 논술로 준비해야 합니다. 읽고 쓰는 양은 다른 걸로 대체되지 않습니다.
"코딩하면 논술 점수 오른다"고 기대하지도 마십시오. 그렇게 말하는 곳이 있으면 걸러 들으시는 게 좋습니다. 점수는 그렇게 단순하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다만 아이가 글을 못 쓸 때, 원인을 글솜씨에서만 찾지 마십시오. 무엇을 묻는지 못 잡아서, 순서를 못 세워서, 뭘 버릴지 못 정해서일 수 있습니다. 그건 다른 방법으로도 훈련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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